먹으로 그린 회화 같은 조형작품, 살아 숨 쉬는 듯
갤러리 폼 '박성태 기획전'… 입체적 형상에 빛과 그림자 더해져 '실감'
 
 

먹으로 그린 회화 같은 조형작품, 살아 숨 쉬는 듯
먹으로 그린 회화 같은 조형작품, 살아 숨 쉬는 듯.
대나무 도구를 이용해 알루미늄 망에 입체적 느낌을 표현하는 작가 박성태
 

먹으로 그린 회화 같은 조형작품, 살아 숨 쉬는 듯.  갤러리에 전시된 '비마'(飛馬)

 
10여 마리의 말이 갤러리 한쪽 벽면을 화선지 삼아 힘차게 내달린다.

갈기를 휘날리며 때론 하늘로 솟구치고, 때론 포효하듯 달려간다.
멀리서 봤다면 먹과 화선지로 그린 그림이라 했으리라.
이런! 알루미늄 그물망으로 만든 조형 작품이었다.

'먹으로 그린 회화 같은 조형 작품'을 갤러리 폼에서 기획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박성태(51). 이미 국내뿐 아니라 중국,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프랑스, 러시아 등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전시활동을 해 온 작가. 부산에서는 첫 전시다.

작가는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등 금속망을 이용해 인체나 말의 형상을 표현했다. "철망에 스케치해 자른 다음, 그 형태로 누르고 펴서 의도한 형상을 만들죠."
작가는 닳을 대로 닳은 대나무 도구를 이용해 직접 시범을 보였다.
"먹의 농담, 필선의 성격에 따라 회화적 느낌이 달라지듯 붓은 아니지만 대나무 도구를 통해 농담을 표현하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작가의 손놀림과 도구의 반응에 의해 그물망은 마치 수묵화처럼 입체적인 농담까지 표현된다.

이는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동양화의 수묵 정신이나 기법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 작가의 실험적인 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작품 활동을 보면 더 놀랍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손으로 만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타고난 재주꾼이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다.
종이와 붓으로 시작한 그의 동양화 평면 작업은 곧이어 테라코타를 이용한 작업으로 바뀌더니, 이어 한지 점토를 이용한 조형작업(한지 캐스팅)으로 바뀌고, 다시 그림자를 이용한 그물망 작업으로 바뀌어 왔기 때문이다.

그물망 작업도 우연처럼 시작했다.
"2001년께였죠, 집사람이 창문 모기장 수리를 도와 달라고 해 작업을 하다, 이거면 뭔가 되겠구나 싶었죠. 그동안 작업을 해 왔던 재료들이 워낙 무거워 전시 한 번 하려면 짐이 만만치 않았어요."

그의 작품에서 알루미늄 망의 씨줄과 날줄이 이루어낸 조직은 이미지의 최소단위인 픽셀이 된다. 나아가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 조직임과 동시에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를 상징할 수도 있을 터. 견고하게 짜인 조직은 작가의 손을 거쳐 입체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망의 씨줄은 놓아두고 날줄을 가지런히 풀어헤치니 멋진 말의 갈기가 된다.
반대로 날줄은 놓아두고 씨줄을 펼쳐 가위로 다듬으면 바람에 휘날리는 멋진 꼬리가 된다.

입체적 형상에 다시 빛과 그림자가 더해지니 작품에 감칠맛이 살아난다.
작가의 손길을 뛰어넘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특히 빛은 먹과 같은 효과를 낸다. 빛이 그린 그림자는 어떤 실체보다 더 생생하고 밀도가 높다. 빛과 철망이 이루어내는 실루엣은 물과 먹이 만들어내는 실루엣과 유사하다. 빛과 그림자로 그린 회화. 한참을 보고 있으면 한 마리 그림자가 달리고, 그 밑의 말이 달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말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달리는 말의 거친 호흡마저 느껴진다.

보는 각도에 따라 겹쳐진 그림자 덕분에 더 많은 그림자가 빚어내는 형상의 가변성은 또 다른 시간의 개입을 유추하게 한다. 이처럼 예술의 환영(illusion)은 실상과 허상을 병치시키는 방식을 통해 어느덧 새로운 차원에 도달하고 있다.
갤러리 벽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환영처럼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말의 움직임! 느껴보시라.

▶박성태 전=10월 31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갤러리 폼. 051-747-5301.


                                                                                                  2011-06-23 게재
                                                                            정달식 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