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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15일 
"`게르니카`처럼 소묘만으로도 예술 가능"

- 해운대 갤러리 폼 내달13일까지
- 에로틱 풍의 추상 드로잉부터 역동하는 생명감 표현작까지
- 1976년~최근 소묘 총망라 전시
- "우리민족의 화려한 오방색 써 긍정적인 기운 일으키고 싶어"

 
'이 사람'을 만나면 세 번 놀라게 된다. 우람한 체격과 황소 눈을 닮은 부리부리한 눈매의 외모에 놀라고,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란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유려한 언변은 물론 외모와 달리 섬세하고 세련된 감성의 소유자라는 점에 다시 놀란다.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이면서 홍익대 미대 교수인 이두식(65) 위원장을 일컫는 말이다. 이 위원장이 부산 해운대구 우동 갤러리 폼에서 개인전 '인생의 여백-이두식 드로잉' 전을 열고 있다. 그동안 해외와 서울 등지에서 활발히 전시했지만 비엔날레 수장을 맡은 동안은 부산에서의 개인전을 갖지 않겠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하지만 오는 7월 임기가 끝나는 만큼 스스로 정한 금기를 풀고 작품을 들고 온 것이다. 지난 1990년대, 2000년대 초 이후 세 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6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바나나, 절개된 복숭아 등으로 묘사한 에로틱 풍의 추상 드로잉에서부터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중반까지 즐겨 그렸던 '생의 기원'을 거쳐 빠른 손놀림과 거침없는 필력을 엿볼 수 있는 1990년대~최근까지의 드로잉 작품까지 총망라돼 있다. 더욱이 이번에는 일반 그림이 아닌 드로잉만으로 전시를 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드로잉(데생, 스케치, 소묘)은 작가에겐 생존의 호흡이며, 그림의 기초다. 늘 드로잉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드로잉 하나로도 훌륭한 예술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소묘를 잘하는 사람이 결국 예술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훌륭한 드로잉 작품이다. 특히 현대미술에서는 드로잉의 재료가 연필이나 목탄 외에도 광범위하기 때문에 동양 붓을 많이 쓴다. 연필이나 서양 붓이 표현할 수 없는 부문이 부드러운 모필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양화가이면서도 동양의 전통 미학 기법을 즐겨 쓰기에 유독 이 위원장의 작품에는 여백의 미가 강조돼 있다. 갤러리 중앙 벽면에 소개된 작품의 경우, 굵고 가는 모필 등으로 대담하게 선을 그으면서 거침없이 아래위로 뻗어 나갔다. 물고기, 새, 말, 닭 등이 숨은그림찾기처럼 드로잉 속 여기저기에 감춰져 있고 컬러풀한 유화 물감으로 색을 칠했다. 역동하는 생명감이 느껴진다.

"타고난 체질이 원래 그렇다. 그림을 그리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분석적인 것과 감성적인 태도다. 전자는 반드시 에스키스(스케치 또는 밑그림)를 하는 데 반해 나는 바로바로 그린다. 직관에 따라 즉시 감정을 표현해내기 때문에 단숨에 그려낸다. 즉흥적 감각·감성을 표현하기에 다작이 가능하다."

부산비엔날레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동안에도 연평균 170점의 그림을 그렸다는 그다. 작업과정에는 비엔날레위원장, 교수, 한국실업배구연맹 회장 등의 사회적 중압감에서 벗어나 작가로서의 자유로움을 누린다는 말이다. 평균 수면 시간 4시간으로 매일 새벽 일어나 그림을 그린다는 이 위원장은 "지금까지 우리네 작품은 피폐하고 가난에 찌들었던 우리 민족처럼 우울하고 어두운 풍의 작품이 많았다. 그런 그림에 반기를 들어 우리 민족의 화려한 오방색(빨강, 노랑, 파랑, 검정, 흰색)을 대담하게 쓰면서 긍정적 기운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뜨거운 추상화가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때론 감성이 너무 풍부해 그림 속에 '잔소리가 많이 들어가 있다'라고 스스로 평가하는 그는 앞으로는 조금 더 담백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70대쯤에는 인물이 주인공이 된 우리 이웃의 얼굴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지난해 연말 낙상해 목발을 짚고 걸어 다녀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쁘지만 이번 전시회를 위해 5일간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렸다는 이 위원장. 오방색이 출렁이는 작품 속에서 꿈틀거리는 작가로서의 DNA가 전해져 왔다. 다음 달 13일까지. (051)747-5301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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